인터뷰
[아시아 소셜임팩트 트립 #일본편1] 컴퓨터 리사이클로 난민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People Port
IRO2021.08.19 15:46
아시아 소셜임팩트 트립 #일본편 1
이 시리즈에서는 아시아 각 도시의 사회혁신사례, 혁신가들의 활동과 그들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여전히 해외여행이나 해외연수를 가기가 어려운 지금, "어떤 사회문제가 있고 어떤 활동이 있을까?", "와, 만나보고 싶어! 더 알고 싶어!" 등, 소소한 ‘앎의 계기’와 ‘연결과 교류’의 계기를 만들어가는 시리즈입니다.
요코하마시의 키쿠나역에서 내려 십여분 걸었을까. 한적한 골목한쪽에 자리잡은 가게가 눈에 띈다. 하얀 벽과 대조를 이루는 큰 창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창을 통해 보이는 내부의 벽과 책상의 황갈색 나무가 마치 따뜻한 불빛이 스며나오는 것처럼 보이는 이곳. 여기는 11명 난민의 일터, 사회적기업 피플포트(ピープルポート, People Port)이다.
(*여기서는 난민 인정을 받은 사람과 심사를 기다리는 사람 모두 ‘난민’으로 표기)
‘난민’이라고 하면 한 번쯤 단어는 들어봤지만 실제로 만나본 적이 없는 사람이 대부분일 것이다. 일본에서는 매년 분쟁이나 박해를 피해 약 1만 명이 난민신청을 한다. 이중 난민 인정이 되는 비율은 0.4%에 불구하지만, 심사에는 4~6년이 걸리기 때문에 우리 주변에는 생각보다 많은 난민이 함께 살아가고 있다. 이들에게는 다양한 과제가 있겠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큰 문제는 일자리와 사회적 고립이다. 일본어를 할 수 없기 때문에 불안정한 아르바이트를 전전하고 일본에서 1년 이상 지내도 일본인 친구가 한 명도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어떻게 하면 난민들이 안심하고 일하고 살 수 있을까.
이 질문이 아오야마 아키히로(青山 明弘, 만31세) 대표가 피플포트를 설립한 계기이다.
[아오야마 아키히로 대표. 피플포트 제공]
사람들이 더 나은 삶을 선택할 수 있도록
2차 세계대전을 경험한 조부모로부터 전쟁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자란 아오야마 대표는 어렸을 적부터 소중한 사람을 잃는 아픔에 공감했다고 한다. 이러한 관심은 계속되어 고등학교 시절에도 다른 수업을 몰라도 세계사 수업에서 전쟁에 관한 내용은 진지하게 들었다고 한다. 전쟁에는 종교·민족·정치·가난 등 다양한 이유가 있지만, 그 중에서 ‘가난’은 내 힘으로 어떻게든 해볼 수 있을 것 같다는 근거없는 자신감을 갖고 한때는 유엔에서 일하고 싶다는 꿈을 꿨었다고. 대학 진학한 후 진로에 대해 고민하던 2학년, 캄보디아 내전을 주제로 다큐멘타리 영화를 찍으며 생존자들을 인터뷰 할 기회가 있었는데, 한 번은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고 한다.
"그때는 전쟁 밖에 살아남을 방법이 없었다. 너무 가난했으니까.”
그 얘기를 듣고, 아오야마 대표는 다시금 사람들이 더 나은 삶을 선택할 수 있도록 빈곤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졸업 후 그는 사회적기업인 보더리스 재팬에 입사해 일하다가, 2017년 12월 난민 일자리 창출을 목표로 지금의 피플포트를 설립했다.
난민도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피플포트의 주사업은 소형가전, 그 중에서도 주로 컴퓨터 재활용 사업을 통해 난민들의 일자리를 만드는 것이다. 난민의 대부분은 일본어를 할 수 없기 때문에 전문기술을 가진 사람도 일자리의 제약이 따를 수밖에 없었다. 운 좋게 난민 인정을 받고 일자리를 구해도 대부분은 아르바이트이기 때문에 생활은 불안정하다. 일본어를 못하기 때문에 일본인과 교류할 수 없고 사회적으로 고립되는 악순환이 계속된다.
“난민들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떠오른 것이 바로 컴퓨터 수리였어요. 컴퓨터 같은 기계의 부품이나 프로그램은 대부분 영어로 쓰여있기 때문에 일본어를 못해도 조작이 가능해요.”
컴퓨터 재활용 사업에 난민을 고용한 것이 아니라, 난민을 위해 컴퓨터 재활용 사업을 시작한 것이다. 즉, 피플포트의 컴퓨터 재활용 사업은 난민을 위해서 고안된 일인 것이다. 평균 3~6개월이면 수리 업무에 익숙해진다.
[어를 할 수 있는 난민들을 위해 탄생한 일자리가 컴퓨터 수리였다. 피플포트 제공]
또한 매일 퇴근 후에는 무료 일본어 교실을 개최한다. 업무에서 사용하는 말은 물론 일상생활에서 필요한 표현과 자신의 감정을 전달할 수 있는 일본어 능력을 익히는 것을 목표로 한다.
[매일 퇴근 후에는 무료로 일본어를 배울 수 있다. 피플포트 제공]
얼굴이 보이는 작업장
작업장 마련할 때는 접근성과 향후 근처로 이사하는 경우도 생각해 여러 노선이 다니면서도 집값이 저렴한 동네를 골랐다. 위치뿐만 아니라 인테리어에도 신경을 썼다. 난민을 비롯한 외국인 노동자는 대부분 도시에서 떨어진 시골이나 공장지대에서 일하며, 미디어를 통해 드러나기 전까지는 그들이 어떤 환경에서 일하는지 알 수 없다. 그에 비해 피플포트의 작업장은 1층이고 창문과 문 모두 유리로 되어있어 밖에서 안을 쉽게 볼 수 있는 구조이다. 이는 사회에 대한 공헌과 사람들과의 소통을 소중히 하고 싶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한다.
과연 작업장은 큰 창은 물론 출입문도 전면 유리로 되어있어, 안에서는 밖의 풍경이, 밖에서는 내부가 훤히 보였다. 언뜻 보면 기계를 수리하는 작업장보다는 오피스나 카페로 보이기도 했다. 많은 사람들에게 난민이라는 존재가 알려지길 바라는 아오야마 대표의 고집을 엿볼 수 있었다.
[피플포트 작업장. 피플포트 제공]
환경과 어린이를 지키는 ‘윤리적’ 컴퓨터
피플포트는 난민 문제를 메인으로 다루지만 그렇다고 환경문제에 소홀한 것은 아니다.
일본에서는 한 해 약 300만 대의 컴퓨터가 폐기되고 있다고 한다. 피플포트는 개인이나 회사, 단체의 요청을 받아 컴퓨터를 비롯해 핸드폰, 태블릿, 카메라 등 소형 전자기기를 수거해 재사용&재활용한다. 수리가 가능한 컴퓨터는 부품을 교체해 재사용하고 수리가 불가능한 컴퓨터나 기타 기기들은 쇠, 구리, 알루미늄 등의 금속자원으로서 재활용한다. 회수부터 데이터 삭제, 폐기까지 드는 비용은 모두 피플포트에서 부담한다.
이상기후나 환경파괴로 인해 보금자리를 떠나야하는 ‘환경 난민’이 증가하고 있기 때문에 환경문제는 난민에 있어서도 중요하다. 이러한 각오를 더욱 분명히 하기 위해 피플포트는 2020년 'ZERO PC'라는 재생 컴퓨터 브랜드를 내놓았다. ZERO PC는 시중 컴퓨터의 절반 가격이며, 새 컴퓨터를 생산할 때 드는 이산화탄소의 90%를 줄일 수 있다. 컴퓨터를 포장할 때도 일절 플라스틱을 사용하지 않고 골판지만 사용하고 있다. 또한 수익 중 일부는 소외된 아이들을 지원하는 NPO에 기부된다.
[좌: 회수한 폐컴퓨터는 부품을 교체해 재사용하거나 금속자원으로 재활용한다. 우: 피플포트의 재생 컴퓨터 브랜드 ZERO PC. 피플포트 제공]
소비가 바뀌면 기업이 바뀌고 그것이 다시 사회의 변화로 이어진다고 아오야마 대표는 믿는다. 실제로 중고 컴퓨터를 판매하는 기업은 많지만, 피플포트를 이용하는 고객들은 난민이나 환경 등의 가치에 공감해 찾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한 달에 평균 150대가 판매되는데, 대부분 SNS나 주변의 소개를 듣고 피플포트를 찾아온다.
난민도 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 구조
주사업으로 컴퓨터 재활용을 선택한 데에는 언어 외에도 또 다른 이유가 있다. 난민들이 ‘좋은 일’을 함으로서 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난민은 무서운 사람들이다, 왜 국민의 세금으로 지원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등등 난민에 대한 편견과 거부감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난민들이 환경보호와 어린이 돌봄에 기여한다면, 이러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긍정적으로 바꿀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이는 난민들에게 있어서도 여기에 발붙이고 살아갈 이유와 힘이 될 것이다.

[ 피플포트의 비즈니스 구조. 피플포트의 허락을 받아 필자가 번역]
아직은 이익이 남을 정도는 아니지만 피플포트에 공감하는 단체나 기업으로부터 무료로 폐컴퓨터를 제공받기 때문에 비즈니스 모델로서는 성립한다는 설명이다. 또한 피플포트는 사회적기업 보더리스재팬의 소속 회사로, 설립 전부터 지원을 받고 있다. 보더리스재팬은 사회적기업가를 양성하는 사회적기업으로 현재 37개 기업이 소속되어 있다. 사업계획 단계에서의 조언은 물론 창업 시에도 마케팅, 노무, 회계 등 다양한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이는 소속 기업들이 회비를 모아 신생 사회적기업을 지원하고 그 기업이 이익이 나면 회비를 내 또 다른 후배를 지원하는 보더리스재팬만의 독특한 ‘은혜 갚기’ 구조 덕분이다. 피플포트도 언젠가 후배 사회적기업을 지원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다문화 공생사회, 더 큰 공감을 향해
도쿄도의 다문화공생 추진방침에는 그 기본 목표에 대해 ‘모든 사람들이 참여, 활약하고 안심하고 살 수 있는 사회의 실현’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피플포트 역시, 어떤 처지에 있든 자신답게 살 수 있는 '다문화 공생사회' 를 만들어 가고 싶다는 소망을 갖고 있다.
국내/해외를 불문하고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는 관문인 항구(port). 들르는 사람에게도 여행을 떠나는 사람에게도 안심할 수 있는 곳이 되고 싶다. 그런 마음으로 붙인 이름이 피플포트(People Port)이다.
과연 피플포트는 난민들에게 그런 항구가 되어주고 있었다. 안정적인 일자리를 넘어 사회와 소통할 수 있는 창이나 다름아니다. 지금은 일본에 머물러있지만 전 세계 곳곳에 현지 법인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한다.
“난민으로 인정되는 비율은 극히 작기 때문에 얼마나 오랫동안 일본에 체재할 수 있는지 모릅니다. 만약 전세계에 피플포트 지사가 있으면 난민들은 심사 상황이나 비자 등에 얽매이지 않고 훨씬 안정적인 생활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우리는 낯선 존재에 대해 쉽게 불안과 거부감을 느낀다. 특히나 코로나로 인해 불안감이 높아진 최근, 청년 취업난, 노인빈곤 등 문제에 대해 외국인 노동자는 적대감의 표출 대상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다양한 인종과 문화가 공존하는 다문화 사회는 하나의 큰 흐름이라고 할 수 있다.
공감은 더 큰 공감으로 발전한다. 누군가를 수용하면 누군가는 소외되는, 상대적인 것이 아니라 나눌수록 포용력은 더욱 커진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외국인이든 동물이든 자연이든. 그리고 그 시작은 불쌍하고 수동적으로 도움을 받는 존재가 아니라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존재로 보는, 시각의 전환부터가 아닐까? -라고 피플포트는 우리에게 묻는 듯하다.
<관련 사이트>
글쓴이ㅣ박소담. 2014년부터 5년 간 서울의 중간지원조직에서 협동조합, 사회적기업, 마을기업 등을 지원하는 일을 했다. 현재 일본 와세다대학에서 석사 과정을 밟고 있다.
발행ㅣ이로 (대표 : 우에마에 마유코)
사진 및 자료 제공ㅣ피플포트
후원ㅣ 서울특별시 청년청 '2021년 청년프로젝트
이로의 모든 콘텐츠(영상,기사,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Copyright © 2021 이로 (IRO) . All rights reserved. mail to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