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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소셜임팩트 트립 #일본편2] 5세 아동에게도 성교육을! 화장지를 통해 성교육을 전달하는 소우렛지
IRO2021.08.25 14:56
성(性)교육은 언제부터 시작해야 할까? 호기심이 생기기 시작하는 초등학교 때? 2차 성징이 나타날 때? 신체도 마음도 성숙했다고 판단될 때?
유네스코에서 권고하는 성교육 시작 연령은 늦어도 만 5세이다(※1). 만 5세는 아무것도 모를 나이, 몰라도 되는 나이라고 생각이 들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아이들은 일찍 스마트폰을 접하고 근거 없는 성 정보가 넘치는 환경에서 살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올바른 성 인식은 더더욱 중요하다.
한국의 경우, 교육부에서 2013년부터 2년에 걸쳐 단계별 ‘성교육 표준안’을 만들어 2015년 전국 초중고등학교에 배포했다. 하지만 잘못된 성 인식을 주입할 수 있는 내용이 포함되어 많은 비판을 받고 있는 것은 물론, 미취학 아동들을 위한 가이드는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성교육의 중요성을 인지하더라도 시작하기란 쉽지 않다. 무엇을 알려줘야 하는지, 언제/어떻게 전달해야 하는지, 어떤 방법이 옳은지, 잘못되면 어쩌지 등등 온갖 질문과 걱정이 앞설 수도 있다.
그렇다면, 소우렛지(sowledge, ソウレッジ)의 성교육 화장지로 시작해보는 것은 어떨는지.

[소우렛지의 성교육 화장지. 소우렛지 제공]
대학생이 화장지에 만화를 그리게 된 이유는?
이 귀엽고도 기발한 화장지를 만든 사람은 만 25세 츠루타 나나세(鶴田 七瀬) 대표. 츠루타 대표가 성교육에 관심을 갖게 된 건 대학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어느 날 친한 친구로부터 성폭력 경험을 듣게 되고, 때마침 세계적으로 숨겨왔던 성폭력 경험을 털어놓는 ‘Me Too 운동’이 일어났다. 이를 계기로 성적인 문제에 관심을 갖고 성교육을 배우기 위해 북유럽까지 날아갔다. 네덜란드, 영국, 덴마크, 핀란드의 교육기관을 돌아보며 큰 차이를 느꼈고, 일본의 성교육의 수준을 올리고 싶다는 생각에 지금의 소우렛지를 설립했다.

[츠루타 나나세 대표. 소우렛지 제공]
처음에는 유학 등의 경험을 통해 얻은 성 정보를 블로그에 게재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하지만 블로그는 이미 어느 정도 성교육에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만 읽는다는 것을 깨닫고 새로운 미디어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때 눈에 들어온 것이 바로 화장실에 있는 화장지였다. 화장지라면 어른/아이 할 것 없이 누구에게든 자연스럽게 다가갈 수 있고, 읽는 사람도 다른 사람의 눈을 신경쓰지 않고 찬찬히 읽을 수 있다.
츠쿠타 대표는 이 아이디어를 곧바로 실천에 옮겼다. 2019년 5월 크라우드 펀딩으로 216만 엔(한화 약 2천2백만 원)을 모아 성교육 화장지를 제작해 180명에게 배포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성교육 화장지는 성교육 방법을 몰라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된다고 확신한 츠루타 대표는 그해 10월부터 정식 판매를 시작했다.

[ 새로운 성교육 채널을 고민하던 중 화장지에 주목하게 된다. 소우렛지 제공]
성적동의, 몸의 구조... 꼭 필요한 내용을 담은 4종의 화장지
소우렛지의 성교육 화장지의 내용은 성폭력, 성적동의, 몸의 구조, 섹슈얼리티 4종류로 구성되어 있고, 각각의 내용은 유네스코의 섹슈얼리티 교육 지침을 기반으로 의사의 감수를 거쳤다. LGBTQ 내용과 관련해서는 당사자의 의견을 수렴해 작성했다. 아이들이 흥미를 갖고 볼 수 있도록 아기자기한 만화와 쉬운 단어로 작성되었다. 한자에는 후리가나(한자 읽는 법을 작게 써놓은 것)가 있어 어린아이들도 혼자서 읽을 수 있도록 배려했다.
가령, 성교육 화장지는 성폭력을 ‘성적동의 없이 성적인 행위를 강요하는 것’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아이들에게는 ‘성적동의’와 ‘성적인 행위’라는 말이 어려울 수 있기 때문에, 어떤 것이 성적동의인지 동의와 거절을 어떻게 구별하는지 차근히 풀어간다. 혹시라도 성폭력을 당했을 때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어디에서 상담을 받을 수 있는지도 적혀있다.
[성교육 화장지 내용의 일부. 소우렛지의 허락을 받아 필자가 번역]
또한 성교육 화장지를 사긴했는데 막상 어떻게 활용할지 모르겠다든지, 화장지를 보고 아이들이 물어보면 어떻게 대답할지 모르겠다든지, 그럴 때를 대비한 가이드북도 있다. 가이드북에는 해당 컷의 목적이나 중요한 포인트, 관련해서 자주 있는 사건, 올바른 대응법 등이 친절하게 안내되어 있다.
[성교육 화장지를 더 잘 활용할 수 있도록 가이드북도 있다. 소우렛지 제공]
화장지가 아니라 '지식을 얻는 계기'를 판매합니다
두루마리 화장지 하나가 약 5,000원 가량. 화장지치고 좀 비싸지 않냐는 질문도 있을 법한데. 이에 대해 소우렛지의 입장은 분명하다.
“서점에서 백지에 비해 책이 너무 비싸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겠지요? 우리가 제공하고 있는 것은 화장지가 아니라, ‘아이들이 안전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돕는 교재’입니다. 아이들의 인생을 생각하면 매우 저렴하지 않나요?”
현재 성교육 화장지는 의료기관이나 도서관에 판매하고 있다. 향후에는 학교나 고아원에도 널리 보급되었으면 하는 목표를 갖고 있다. 실제로 편부모나 빈곤 가정의 어린이가 성교육을 포함한 모든 교육에서 소외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후생노동성의 조사결과가 있다.
소우렛지는 2020년 8월에 10일 간 '5세부터의 성교육을 모든 어린이에게!'라는 타이틀로 크라우드 펀딩을 진행, 572명이 참여해 550만 엔(한화 약 5천7백만 원) 달성에 성공했다. 모금액은 성교육이 필요한 빈곤 가정이나 어린이 식당 등에 성교육 화장지를 지원하는 데 사용되었다. 4천개 이상의 화장지를 통해 총 1,000명 이상에게 성교육이 전달됐다.
[화장지가 아니라 올바른 성 지식을 얻는 계기. 소우렛지 제공]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함께 대화하는 것
소우렛지는 성교육을 위한 보드게임도 개발한다. 그 중 ‘프라베’는 아이들이 프라이빗존을 배우는 카드게임이다. 간단한 룰과 귀여운 카드로 아이들도 즐겁게 신체의 중요부위를 익히고 소중히 하는 법을 배울 수 있다.
인생게임처럼 주사위를 굴려 칸을 이동하며 성에 대해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게임도 있다. 5세 이후부터 아이들이 성장해가면서 어떤 어려움을 겪는지 실제 목소리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나 자신을 어떻게 인식하는지, 스스로를 얼마나 알고 있는지 생각해보는 기회가 되어, 어린이나 청소년은 물론 성인에게도 추천한다. 2시간짜리 온라인 워크숍도 개최한다.
[좌: 프라베는 아이들도 즐겁게 중요부위를 배울 수 있는 카드게임이다. 우: 브레이크 주사위는 어린이나 청소년은 물론 나 자신을 더욱 알고 싶은 성인에게도 추천한다. 소우렛지 제공]
성교육 화장지와 보드게임의 포인트는 바로 대화. 일반적으로 ‘교육’이라고 하면 어른이 아이를, 윗사람이 미숙한 사람을 ‘가르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소우렛지가 생각하는 교육은 다르다. 친구끼리, 가족끼리 이야기할 수 있는 발판을 만들어 주는 것도 교육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60%가 성교육 화장지를 계기로 다른 사람과 성에 관한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늘었다고 대답했다. 자녀들에게도 ‘다른 사람 앞에서 신체 중요부위를 만지면 안 돼’라든지 ‘아기를 이렇게 만들어져’ 등 성에 관한 이야기를 하기 쉬워졌다는 후기도 있다고 한다.(※3) 화장지가 성교육을 포함해 대화의 장벽을 낮추고 있는 것.
부끄러운 건 어쩔 수 없다! 괜찮아!
성(性) 혹은 성교육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먼저 낯간지럽고 부끄러운 느낌이 들지는 않는지. 최근까지도 성에 대한 지식은 묻지 말고 숨겨야 하는 것으로 생각되어 왔다. 그래도 괜찮다. 츠루타 대표의 말을 빌리자면, 그런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우리는 그런 시대를 살아왔으니까.
다만, 지금 시대의 성 지식은 단순히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함이 아니라 몸과 마음을 지키기 위해 필요하다고 츠루타 대표는 강조한다.
“성에 대한 관심은 계속 커져만 가는 반면 자신의 몸과 마음을 지키기 위한 지식을 얻을 기회는 거의 없어요. 성교육의 장벽을 조금이나마 낮추는 데 도움을 드리고 싶어요.”
재미있지만 가볍지 않게, 진지하지만 무겁지 않게 성교육을 전하는 소우렛지. 이렇게 배운 성지식은 삶을 더 즐겁게 사는 지혜로 이어지지 않을까.

[ 성지식은 몸과 마음을 지키기 위해 필요하다. 소우렛지 제공]
※1 : UNESCO, UN urges Comprehensive Approach to Sexuality Education
en.unesco.org/news/urges-comprehensive-approach-sexuality-education
※2 : NPO법인 피루콘(NPO法人ピルコン), 성교육에 대한 앙케이트 집계 결과
pilcon.org/wp-content/uploads/2015/04/23c43e5126ebd8b39dde532afc9431ea.pdf
※3 : 2020 소우렛지 애뉴얼 리포트
<관련 사이트>
글쓴이 : 박소담. 2014년부터 5년 간 서울의 중간지원조직에서 협동조합, 사회적기업, 마을기업 등을 지원하는 일을 했다. 현재 일본 와세다대학에서 석사 과정을 밟고 있다.
발행 : 이로 (대표 : 우에마에 마유코)
사진 및 자료 제공ㅣ소우렛지
후원 : 서울특별시 청년청 '2021년 청년프로젝트
아시아 소셜임팩트 트립 #일본편 2
이 시리즈에서는 아시아 각 도시의 사회혁신사례, 혁신가들의 활동과 그들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여전히 해외여행이나 해외연수를 가기가 어려운 지금, "어떤 사회문제가 있고 어떤 활동이 있을까?", "와, 만나보고 싶어! 더 알고 싶어!" 등, 소소한 ‘앎의 계기’와 ‘연결과 교류’의 계기를 만들어가는 시리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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