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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소셜임팩트 트립 #일본편3] 교토의 구둣방 소셜벤처 ‘구두 신은 고양이’
IRO2021.09.15 15:52
길가의 컨테이너, 건물 모퉁이의 작은 공간에 위치한 구두수선집. 그 작은 공간에서 많은 일이 일어나고, 많은 신발이 거쳐가 새 생명을 얻는다. 구두닦기&수선 역시 전문 기술을 요하는 일이지만 하나의 기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 구두닦이로 포부 좋게 소셜벤처를 설립한 대학생이 있다.
일본의 교토 시청 근처. 길을 가다가도 발걸음을 멈추고 돌아보게 되는 세련된 외관과 깔끔한 내부, 단정히 수트를 입은 직원들까지. 세 명의 장애인이 함께 일하는 구두수선 기업 <구두 신은 고양이(革靴をはいた猫)> 이다.
[구두 신은 고양이 매장 : 구두 신은 고양이 제공]
<구두 신은 고양이> 대표는 27세 우오미 코타(魚見 航大)씨이다. 2017년 대학을 졸업함과 동시에 방문 구두닦이로 사업을 시작했다. 2018년에는 지금의 매장을 오픈, 현재는 방문 구두닦이 외에도 매장에서 구두닦이, 신발 수리, 타 기업과의 연계 사업 등 폭넓게 활동하고 있다.
중고 구두의 판매가격은 0원
<구두 신은 고양이>에는 여기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비즈니스가 있다. 바로, ‘넘겨주기 공헌 프로젝트’. 신지 않는 신발을 기부받아 수선하고 반짝반짝 광을 내 다음 주인에게 전달한다. 신지 않는 신발을 버리지 않고 ‘넘겨줌’으로서 환경에도 공헌한다.
재미있는 것은 이 구두의 가격이다. 5천 엔, 9천 엔, 1만6천 엔 등등... 저마다 붙은 가격표. 언뜻 일반적인 신발가게와 다를 게 없어 보이지만, 이는 ‘판매’가격이 아니라 유지보수 가격이다. 즉, 그 가격만큼 구두 케어를 받을 수 있다. 가령, 5천 엔이면 구두닦이 2회, 1만6천 엔이면 구두닦기 4회와 수선 2회를 받을 수 있다. 가죽의 질 등 좋은 신발은 잘 관리하면 그만큼 오래 신을 수 있기 때문에 가격이 높다. 즉, 중고신발이라는 ‘물건’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케어 ‘서비스’와 아끼는 ‘문화’를 판매하는 생각이다.
[좌 : 구두 신은 고양이에 판매하는 구두, 우 : 물건이 아니라 케어 서비스와 아끼는 문화를 판매한다.구두 신은 고양이 제공 ]
이 독특한 프로젝트는 손님이 우연히 준 헌 구두에서 시작되었다. 구두닦이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다양한 브랜드와 가죽의 신발을 닦아보는 것이 중요한데, 일일이 구두를 사서 연습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러던 중 한 손님이 신던 구두를 연습용으로 기부했고, 이런 헌 구두를 정식으로 모아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에 이르렀다.
때마침 근처 다이마루 백화점에서 헌 옷이나 신발을 회수하는 프로젝트가 있어, 백화점으로부터 헌 구두를 넘겨받아 수선 후 팔기 시작했다. 백화점 내에 팝업스토어를 열어 판매하기도 했다. 손님들의 반응도 좋았다.
“백화점에 중고품을 파는 건 <구두 신은 고양이>가 처음이 아닐까 싶은데요, 생각보다 더 손님들의 반응이 좋았습니다. 친환경 상품이라고 좋아하시는 분들도 계셨고, 좋은 구두를 사서 오래 신고 싶다고 하는 분들도 계셨어요.”
이렇게 헌 구두의 리사이클과 판매는 <구두 신은 고양이>만의 대표적인 사업모델로 자리잡게 되었다.
도전을 결심하게 만든 대학생 시절의 만남
우오미 대표가 <구두 신은 고양이>를 시작한 건 대학교 4학년 때이다. 큰 계기가 되었던 것이 대학 캠퍼스 내에 있는 장애인 취업 사업소인 ‘카페 수림’이었다. 그곳에서 장애인과 학생들이 함께 배우는 프로젝트를 경험할 수 있었다.
카페 수림의 점장인 카와나미씨도 큰 영감을 주었다. 그녀는 장애인을 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 인재라고 굳게 믿고 모두가 함께 배우고 자립할 수 있는 사회를 꿈꾸었다. 실제로 카페 수림은 자신의 꿈에 대해 탐색해보는 시간과 실천 코스를 통해 자립에 대한 목표와 필요한 기술을 익히도록 돕는다.
처음 구두닦이 제안한 것도 카와나미씨였다. 교토역 구두닦이 가게를 유심히 보고는 장애인도 할 수 있다고 판단, 우오미 대표에게 프로젝트 리더를 맡겼다. 하지만 정책을 전공하던 대학생에게 구두닦이나 수선과 같은 기술이 있을리 없을 터. 그는 오사카의 구두닦이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기술을 습득해 사람들에게 전달했다.
[장애인도 할 수 있는 일로서 구두닦이의 가능성에 주목했다. : 구두 신은 고양이 제공]
교수회의 등을 쫓아다니며 구두를 닦았다.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보람을 느끼며 의욕을 내비치기 시작했다. 이제까지는 무언가를 받는 것에 익숙했던 이들이 주체적인 존재로 바뀌기 시작한 것이다.
“그전까지는 장애인은 하기 쉬운 일을 하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새로운 일을 하면서 성장해가는 모습을 보고, 도전할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사람이 바뀌는구나 생각했어요. 도전해 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느꼈어요. 그러다가 문득 자신은 도전하지 않는가 생각이 들었죠. 지금 그만두면 분명 후회할 것 같아서 창업을 결심했어요.”
그렇게 졸업식 전날, 우오미 대표는 지금의 <구두 신은 고양이> 등기를 마쳤다.
다양성에서 포괄성으로
<구두 신은 고양이>에는 현재 지적장애 및 발달장애를 가진 직원을 포함해 총 여섯 명이 함께 일하고 있다. 구두닦이에서 시작한 사업은 구두수선, 리사이클 및 판매로 점차 넓어지고 있다.
하지만 바쁜 와중에도 놓치지 않는 것이 있으니, 카페 수림에서 했던 꿈을 탐색하는 시간이다. 일주일에 한 번은 전 직원이 함께 이야기하는 시간을 갖고자 노력한다. 앞으로 어떤 동료를 늘려가고 싶은지, 어떤 회사를 만들어가고 싶은지, 사회에 어떤 공헌을 하고 싶은지 나누는 것이다.
“비즈니스도 결국 사람 만들기잖아요. 그저 눈앞의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이 일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생각해보고 나누는 시간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현재 구두 신은 고양이의 직원은 여섯 명. : 구두 신은 고양이 제공]

[구두수선을 하는 모습. : 구두 신은 고양이 제공]
근래에는 카페 수림의 점장 카와나미씨가 주도하는 일본 인클루전 협회에도 참여하며 공감&공유의 범위를 넓혀가고 있다. 협회는 포괄적인 사회를 지향하는 청년들의 비즈니스를 서포트하고자 하는 이들이 참여하고 있으며, 청년과 기성세대를 아우른다. <구두 신은 고양이>도 기발한 사업으로 주목을 받고 안정화되어가고 있지만, 이는 청년 자신들끼리 해낸 것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카와나미씨와 같은 ‘어른’들의 역할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어쩌면 장애의 유무, 나이의 많고 적음은 그 자체로 다양성일지도 모른다. 우오미 대표는 그러한 다양성 안에서 새로운 아이디어가 움튼다고 믿으며, 이를 ‘포괄성’이라 부른다.
“다양성이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이라면, 포괄성은 그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무언가를 만들어가는 것, 도전하는 것을 포함한다고 생각해요. 서로가 서로를 살려가는 것이죠.”
청년과 소셜벤처와 구두닦이
청년, 장애인, 구두닦이, 소셜 비즈니스...
조금은 낯선 조합. 누군가는 청년과 구두닦이가 어울리지 않는다고 할 수도 있고, 또 누군가는 사회혁신과 연상 짓기 어렵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실제로 <구두 신은 고양이>도 구두닦이로 사업이 되겠냐는 주변의 우려 속에서 출발했지만, 지금은 여섯 명의 청년이 매일 출근하는 어엿한 기업이 되었다. 장애인 사업장이 아닌 일반 주식회사로 시작해 서비스 퀄리티를 고집해 온 결과, 고객으로부터 신뢰를 받는 기업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고치고 광을 내 반짝반짝 새 빛을 찾은 구두처럼, <구두 신은 고양이>를 통해 구둣방은 소셜 비즈니스 모델로서 새 빛을 얻은 것처럼 보인다. 이들이 닦고 수선하는 것은 구두 뿐만이 아니라, 낡고 주름진 사고방식일지로 모른다.
“낡은 구두는 시간을 함께 보낸 증거.
우리는 당신이 이 구두와 함께 보낸 시간을 다시 닦습니다.
미래를 향한 발걸음을 돕고 싶습니다.
- <구두 신은 고양이> 홈페이지에서 발췌”

[구두 신은 고양이 제공]
관련 사이트
- <구두 신은 고양이> 홈페이지
글쓴이 : 박소담. 2014년부터 5년 간 서울의 중간지원조직에서 협동조합, 사회적기업, 마을기업 등을 지원하는 일을 했다. 현재 일본 와세다대학에서 석사 과정을 밟고 있다.
발행 : 이로 (대표 : 우에마에 마유코)
사진 및 자료 제공ㅣ구두 신은 고양이
후원 : 서울특별시 청년청 '2021년 청년프로젝트
아시아 소셜임팩트 트립 #일본편
이 시리즈에서는 아시아 각 도시의 사회혁신사례, 혁신가들의 활동과 그들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여전히 해외여행이나 해외연수를 가기가 어려운 지금, "어떤 사회문제가 있고 어떤 활동이 있을까?", "와, 만나보고 싶어! 더 알고 싶어!" 등, 소소한 ‘앎의 계기’와 ‘연결과 교류’의 계기를 만들어가는 시리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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