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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에서 삶을 꾸리는 가능성’에 대답하는 사람들

IRO2021.10.18 11:42

코로나로 인해 맞닥트린 변화 중 가장 크게 체감하는 것은 바로 ‘머무름'이다. 이동을 제한하고, 되도록 집 안에 머무르라는 코로나 시대의 제1원칙은 우리에게 ‘머무는 장소가 어디인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자의적이든 타의적이든 시작된 머무름의 시간 동안 사람들은 ‘집'이라는 공간과 나의 관계를 탐색했고, 두발로 갈 수 있는 거리의 마을을 발견했고, 어짜피 이동하지 못한다면 도시에 산다는 것의 의미는 뭘까? 라는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동시에 ‘지역에서 삶을 꾸리는 가능성’이란 선택지도 등장했다. 

 

여전히 수도권이나 광역 대도시가 아니라면 지방도시는 ‘소멸'이라는 무거운 화두를 끌어안고 있다. 양가적인 현실이 존재하는 곳에서 각자의 관점과 가치를 중심으로 ‘지역'에 접근하고 있는 사례들을 모아보았다. 


(바오스앤밥스의 모습, 사진출처 : 빌드 페이스북)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새로운 혁신이 아니라 도시가 가지고 있던 긍정적 기능의 회복입니다.  

도시와 문화를 만들다 - 빌드 
 

빌드는 경기도 시흥에 위치한 ‘월곶’을 누구나 살고싶은 도시로 만들겠다는 상상으로 시작된 기업이다. 처음엔 레스토랑 <바오스앤밥스>로 시작, 뒤이어 <월곶동 책 한송이>라는 플라워&북 카페가 문을 열었다. 세번째 매장은 아이주도놀이를 내세우는 키즈카페 <바이마이>다. 지금은 제철 식재료를 판매하는 <월곶식탁>도 문을 열었다. 레스토랑부터 키즈카페까지 문어발식 확장을 하는 건가? 생각이 든다면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어야 한다. 지역 커뮤니티를 만들고, 그 필요를 충족시키며 선택된 자연스러운 확장이기 때문이다.

 

2016년 수도권 여타 도시에 비해 문화적 인프라는 미진했지만 48%에 달하는 육아인구가 가진 잠재력을 보았던 빌드는 지역 내 엄마들을 서포트하며 지역사회에 필요한 기업이 되기 위한 기반을 다졌다. 자연스럽게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을 위한 공간에서, 아이들을 위한 공간, 그리고 지역사회의 건강한 먹거리를 소비자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고민하게 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국내 첫번째의 부동산 시민자산화라는 성과를 이루기도 했다. 1호점이었던 <바오스앤밥스>는 56명의 시민주주와 함께 주식회사로 분리독립하기도 했다. 도시 비지니스의 지속가능성이 무엇인지 보여주고 있는 빌드는 ‘혁신'이라는 것이 이전에 존재하지 않던 것이 아니라, 가지고 있던 기능의 회복임을 이야기한다. 빌드는 시흥시를 넘어 커뮤니티성을 중심에 두고 지역 내 공간과 시설 개발기획을 전문으로 하는 대표적인 기업이 되었다.

 

(유휴하우스의 전경, 사진출처 : 유휴 홈페이지)

 

살고 싶은 동네에서 시작하는 새로운 일상 

빈집 큐레이션 플랫폼 - 유휴 


플랫폼의 시대, 스트리밍의 시대가 열리며 소유해야만 하던 많은 것들이 이용할 수 있는 것으로 대체되고 있다. 음악, 도서, 자동차, 옷이나 가방, 사무실까지. 그렇다면 주거와 일상은 어떨까? 주거와 일상도 유튜브처럼 내가 편한 시간에 내가 원하는 장소에서  play 시킬 수 있을까? 빈집 큐레이션 플랫폼 유휴는 원하는 지역에서 원하는 일상을 시작해볼 수 있도록 거주지를 제공하는 플랫폼이다. 유휴하우스 멤버십에 가입하면 1년간 전국에 있는 유휴하우스를 원하는 기간만큼 이용할 수 있다. 

 

빈집을 만든 회사는 블랭크다. 블랭크의 문승규 대표는 우연한 기회로 남해를 방문했다가, 남해에 가고자 하는 도시의 청년들과 남해의 수많은 빈 집이 서로 연결되지 못하고 있는 것을 발견해 이를 비지니스의 관점으로 풀어냈다. 빈집의 문제는 도시에서 보던 것보다 심각했다.  유휴하우스의 거주 구독 서비스는 기존의 에어비엔비나 게스트하우스같은 숙박업과 어떻게 다를까? ‘숙박'은 소비적인 사람을 불러모으고, ‘거주'는 생활하고 생산하는 사람을 불러모은다. 거주하는 사람에게 제공되는 서비스는 숙박하는 사람에게 제공되는 서비스와 달라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둘 중 어떤 관점이 지역에 도움이 될지는 너무나 준명하다. ‘거주자'로서의 정체성을 가진 이주민들이 모이는 플랫폼인 것이다. 

 

한국은 문화자원의 도시집중이 유난히 극심한 사회다. 지역살이를 하는 청년들도 주말이면 문화생활을 위해 서울을 오가는 일이 잦다. 유휴하우스는 이러한 도시의 다양한 문화가 사람을 타고 지역에 전파되고 자리잡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유휴를 타고  다양한 라이프스타일이 지역사회에 자리잡는 모습을 기대한다. 

 

(아웃도어라운지 밗의 전경, 사진출처 : 아웃도어라운지 밗 페이스북)
 

두번째 고향, 로컬라이프 팩토리 프로젝트 

(주)공유를 위한 창조의 아웃도어라운지 밗 

 

거제도 장승포에 아웃도어라운지 밗이라는 공간이 문을 열었다. 일상적 아웃도어 활동부터 캠핑, 산악, 요트까지 그야말로 아웃도어와 관련된 모든 것을 다룬다. 밗은 밖을 뜻함과 동시에 바다, 강 산을 모두 담은 글자다. 바다, 강 산을 모두 아우르고 있는 거제의 모습이 담겨있기도 하다. 아웃도어라운지 밗은, 커뮤니티 바를 운영하거나, 다양한 아웃도어 프로그램과 캠프를 운영했다. 

 

밗을 만든 곳은 부산에서 도시민박촌 <이바구캠프>를 운영했던  (주)공유를위한창조이다. 사람의 방문이 뜸해진 동네, 이바구길이라는 도시문화자원을 중심으로 현재는 거점공간, 창업공간, 숙박공간이 한데 어우려져 운영되고 있다.  밗은 공유를 위한 창조의 <로컬라이프팩토리 프로젝트>의 앵커공간으로, 장승포 주변엔 라이프스타일 편집숍 <여가>와, 코워킹 공간<안>이 함께 운영되고 있다. 누구에게나 ‘언제든 찾아갈 수 있는 두번째 고향'이 되어, 연고가 없는 사람들을 위한 인프라를 조성한다. 

 

이바구 캠프에서 주민이 직접 살리는 마을의 가능성을 본 박은진 대표는, ‘내가, 우리가 살고 싶은 곳'이 될 마을을 찾기 시작했다. 몇군데 도시가 물망에 올랐지만 최종 결정된 곳은 거제의 장승포였다. 큰 호황을 누렸던 동네이지만, 조선업이 쇠퇴하며 사람도 떠나기 시작한 이 곳에서 변함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해양자원과 자연자원의 가능성을 봤다.  아웃도어라운지 밗은 기획된 프로그램으로 외지인을 끌어들이는데 집중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과정을 통해 지역의 주민들이 직접 지역의 자원이 가지고 있는 새로운 가능성을 보게 한다. (주)공유를 위한 창조는 행정안전부의 청년마을만들기 사업 중 하나로 아웃도어 아일랜드를 기획, 조성중이다. 

 

( 괜찮아마을의 거점공간 ‘반짝반짝' , 사진출처 : 괜찮아마을 홈페이지 )

 

누군가의 인생을 바꾸는 1주일 

(주)공장공장의 괜찮아마을 
 

목포엔 특별한 이름의 청년 마을이 하나 있다. 바로 ‘괜찮아 마을'이다. 홈페이지 주소는 돈워리 빌리지다. 각자도생의 벼랑끝으로 개개인이 내몰리는 시기, 현재까지 100명이 넘는 청년들이 목포의 이 작은 공간을 찾아 머무르며 자신의 삶을 보살폈다.  괜찮아마을은 스스로의 삶을 버텨낼지 살아낼지 선택해야하는 이 시대의 청년들에게 손을 내밀고, 자신의 삶을 살펴볼 기회를 제공하고, ‘커뮤니티 안에 자리잡고 사는 낯선 경험을 ' 제공하는 (주) 공장공장의 프로그램이다. 프로그램의 기간에 따라 일간 / 주간 / 월간 괜찮아 마을로 프로그램이 나뉜다. 괜찮아마을의 이 프로그램은 지금 정부의 정책 사업이 되어 전국에 청년마을 프로젝트로 확산되었다.  

 

괜찮아마을은 청년들이 자신을 재생할 수 있고 회복할 수 있는 공간으로 목포라는 도시에 거점을 잡았다. 처음부터 목포를 되살리려고 괜찮아 마을을 연 것은 아니다. 목포 정착 이전엔 여행사를 운영해온 공장공장은, 여행프로그램에서 만난 청년들이 자신의 불안을 꺼내고 나누고, 위로받는 모습들을 보며 ‘우리에게 필요한 건 어쩌면 ‘괜찮다는 말' 한마디 아닐까?’ 라는 생각으로 괜찮아 마을을 시작했다. 괜찮아마을의 프로그램을 통해, 자신의 회복력을 확인한 청년들은 괜찮아 마을의 주변으로 흩어져 자신의 삶을 기획하고, 실행하기도 하고, 또 다른 곳에서 자리잡기를 시도하기도 한다. 

 

빠르게 성장하는 것, 성취하는 것, 각 나이에 따라 해야할 역할과 할일이 정해져있는 사회. 우리에게 익숙한 사회의 모습이다. 국가주도적인 고도성장을 통해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된 동아시아 국가 청년들은 언어와 모습은 다르더라도 비슷한 삶을 반복하고 있다. 괜찮아마을은 지역문제 뿐만 아니라 사회에게도 지금 향해야야할 방향이 어디인지를 보여준다. 

 

 (해녀의 부엌 공연 후 제공되는 식사 장면, 사진출처 : 해녀의 부엌 홈페이지) 

 

아흔 살 할머니의 맛있는 제주 이야기

해녀의 부엌 

 

분명히 식당인데, 어두컴컴한 홀로 입장한다. 해녀의 삶을 소재로 한 한편의 공연이 펼쳐진다. 공연 중간, 90세 최고령 해녀가 등장할 때가 이 연극의 클라이막스다. 눈물콧물로 범벅이 된 관객들이 박수를 치고, 전문배우와 출현한 해녀 배우가 함께 인사한다. 해녀의 부엌의 첫번째 프로그램이다. 총 3장으로 구성된 해녀의 부엌, 두번째 프로그램은 마치 홈쇼핑같은 구도로 50년간 물질을 해오신 해녀님이, 제주 바다에서 해녀들이 잡아올리는 해산물을 직접 소개하고, 손질법과 요리법을 알려주신다. 이후 식사가 이어진다. 해녀의 식탁엔 어떤 반찬과 음식들이 올라갈까? 생전 보도 듣도 못한 음식들이 다채로운 메뉴로 펼쳐진다. 무려 뷔페식 식당이다. 초등학생부터 노인들까지 행복한 표정으로 식사를 음미한다. 

 

식사가 끝날때쯤 연극에 등장했던 최고령 해녀가 무대에 등장한다. 세번째 프로그램인 토크콘서트의 시작이다. 해녀의 부엌을 직접 경험하기전까지만 해도, 해녀와의 토크콘서트라는 이 프로그램이 해녀할머니의 의사와 무관하게 기획된 것은 아닐까 우려했지만 걱정은 기우였다. 최고령 해녀는 사람들과 만나고, 사람들이 질문하고, 사람들이 해녀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이 시간을 너무 사랑한다며 관객의 마음, 관객의 건강, 관객의 삶을 걱정해주고 따뜻한 말을 쏟아낸다. 기분이 좋아진 해녀할머니는 구성진 제주 민요를 풀어내고, 오늘도 이야기를 들어주어 고맙다고 관객들에게 엄지손가락을 올려주었다. 

 

이 공연은 제주 출신으로 서울에서 수학한 예술가이자 사업가인 김하원 대표의 작품이다. 고향에 내려갔다가 ‘뿔소라'의 판로를 놓고 고민중인 지역사회의 문제를 해결해볼겸, 자신이 너무나 잘 알고 매력을 확신했던 제주의 자원을 알릴겸, 무엇보다 소비 중심의 관광지로 전락해버린 제주라는 지역의 진짜 이야기를 전할 겸 기획한 이 공연은 이제 자리를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다. 해녀의 부엌은  2호점을 준비중이다. 공간의 선정부터 무대 연출, 프로그램의 전개, 상품기획까지 무엇하나 빠질 것이 없는 해녀의 부엌은 제주를 찾는 도시인들에게 필수코스가 되어, 제주에서 찾아야할 진짜 이야기를 보여준다. 무엇보다, 제주의 걱정이었던 뿔소라에 대해서는 아주 확실히 배우고 간다. 

 


이 기사에서 만나본 5가지 사례는 모두 각기 다른 관점을 가지고 있다. 빌드의 경우 도시가 가지고 있는 자원들이 긍정적으로 맞물려 돌아갈 수 있는 생태계를 보는 관점을 취한다. 유휴의 경우 한명, 한명의 사람을 문화자원으로 보고 다양한 문화가 전국에 퍼지며 만들어가는 변화를 그린다. 공유를 위한 창조의 로컬라이프팩토리 프로젝트는 연고가 없는 사람이 지역에 정착할 때 무엇이 필요할지를 고민하며 새로운 관계를 도모한다. 공장공장의 괜찮아 마을은 장소보단 사람에게 집중하여, 특정시기의 사건을 만들고 관계맺는 방식을 취한다. 해녀의 부엌은 제주 사람만 이 알 고 있고, 할 수 있는 것을 컨텐츠화하여 제공하므로서 제주의 삶으로 방문객을 깊게 끌어당긴다. 각기 다른 관점과 방식으로 다른 문제를 해결하는 이 기업들이 한 도시에서 시너지를 내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하는 상상도 해본다. 

 

변화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 가장 감탄하는 지점은 문제를 어떻게 설정하고 정의내리는지에 따라 정말 다양한 솔루션을 만들고 실험해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통해 ‘문제의 발견'이 좌절이나 절망같은 단어가 아니라 ‘가능성'이라는 단어로 치환될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하는 사회가 되길 바란다. 

 


글쓴이 : 정소민. 공공문화기획자. 시민 개개인이 추구하고 만들어가는 공공성을 믿습니다. 개인 프로젝트형 시민참여활동에 관한 연구를 했습니다.

 

발행 ㅣ이로 ( 대표 우에마에 마유코) 

후원 ㅣ서울특별시 청년청 ‘2021년 청년프로젝트’ 


이로의 모든 콘텐츠(영상,기사,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Copyright © 2021 이로 (IRO) . All rights reserved. mail to [email protected] 

#지역 #한국 #사회혁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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