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아시아 사회혁신가 인터뷰_#6] ‘음식과 창의력으로 상생사회를’ 실패의 경험에서 태어난 안심 먹거리 디자인 툴 <푸드픽토>
IRO2021.10.22 14:31
<푸드픽토>는 알레르기나 종교, 사상으로 인해 음식 섭취에 제한이 있는 사람들에게 안심하고 음식을 먹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디자인 툴입니다.
요즘 일본 전국의 레스토랑이나 호텔에 점차적으로 도입되고 있는 이 디자인 툴의 탄생에는 주식회사 푸드픽토의 대표인 기쿠치 노부타카(菊池信孝)씨가 경험한 뼈아픈 실패의 기억이 숨겨져 있다고 합니다. 기쿠치 대표에게 어떻게 푸드픽토를 만들게 되었는지, 그리고 어떻게 보급하게 되었는지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먹을 수 없는 식재료를 한눈에 알 수 있는 카드. 푸드픽토의 일러스트는 다양한 국적을 가진 1500명의 대상자에게 설문 조사를 실시하여, 이를 토대로 어떤 문화권에서라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푸드픽토가 탄생하게 된 계기는 학창시절에 경험한 뼈아픈 실패에서 시작되었다.

- 푸드픽토는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나요?
학창시절에 자원봉사 활동으로 세계 각국에서 온 일본국제협력기구(JICA) 연수생을 수행하게 되었습니다.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무렵에 일본에 처음 오게 된 사우디아라비아 연수생을 수행하게 되었어요. “일본 음식을 먹어보고 싶다”는 요청을 듣고 메밀국수 전문점이나 초밥 전문점 같은 곳으로 안내하려고 했는데 그의 대답은 “NO”였습니다. 이 음식들에는 돼지고기나 알코올이 들어가 있지 않다고 설명을 했지만, 철저한 무슬림이었던 그는 “어떤 식재료가 들어있는지 잘 모르는 음식은 먹지 않겠다”며 결국에는 맥도널드로 가서 피시버거를 먹게 되었던 웃픈 경험이 있어요.
특정 식재료를 못 먹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실제로 접해 보기는 처음이었지요. 모처럼 일본에 오신 분에게 제대로 정성스레 안내를 할 수 없게 되어 안타까울 뿐이었어요. 이 경험이 발단이 되어, 일본에 있는 다른 외국인들도 이런 비슷한 불편함을 느끼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더군요. 주변의 유학생들에게 조사해 보니 아니나 다를까 비슷한 의견들이 많았어요.
‘이건 뭐라도 좀 해 보자’는 생각이 들어 멤버를 모집하고 동아리를 만들었습니다. 한중일영 4개의 언어로 대표적인 식재료를 표기해서 포스터를 만들어 학교 봄 축제에 문을 연 노점 80곳에 설치해 보았습니다. 호평이 대부분이었지만 ‘4개 언어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의견도 많이 있었어요. 마침 외국어대학교에 재학중이었던지라 알아보니 언어별로 25개 학부가 있긴 하더라구요. 그렇다고 이걸 다 넣을 수도 없고…….(웃음)
그러던 중에 동아리 멤버 중 하나가 일러스트로 넣자는 아이디어를 냈고, 그렇게 진행해 보기로 했어요. 그때부터 가을 축제를 목표로 준비를 시작해서 식재료를 일러스트로 알기 쉽게 정리해 나갔습니다. 그것이 푸드픽토의 원형이라 할 수 있지요.
- 동아리를 NPO 법인화 하고, 대학 졸업 후에도 푸드픽토 사업을 이어 나갔습니다. 당시부터 그런 계획을 가지고 계셨던 건가요?
학교 축제가 끝난 후에 간사이 지역 학생 창업 콘테스트에 참가하면서 의식에 변화가 생겼어요. 사실 창업에 대해서 별로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당시에 어쩌다가 듣게 된 강의의 담당 교수님이 그 콘테스트의 실행위원장이셨거든요. 한번 참가해 보라고 권해 주시더라구요.
1차, 2차, 최종까지 심사가 있었는데 준비 과정이나 프레젠테이션을 통해 더 심도 있게 푸드픽토 사업을 대하게 되면서 ‘비록 나의 실패담에서 비롯된 사업이기는 하지만 푸드픽토는 세상이 필요로 하는 사업이 아닐까’라고 생각의 변화가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APEC 국제회의와 간사이국제공항에 채택되면서 사업이 본격화

- 졸업 후에 일단 취업을 했지만 회사를 그만두고 푸드픽토 사업에 주력하게 되었다고 들었습니다.
졸업할 무렵에는 아직 수익 창출에 대한 전망이 서지 않았을 때라 창업 콘테스트에서 알게 된 분의 권유로 1년 정도 그 회사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에 요코하마에서 개최된 APEC 국제회의장에 푸드픽토 사용이 채택되면서 사업에 집중하게 되었어요. APEC 때는 NHK에서 취재도 해 가셨고, 마침 그 무렵에 간사이국제공항에서도 푸드픽토를 도입하기로 결정이 되었어요. 제2터미널 개장을 계기로 동남아시아에서 LCC노선이 본격적으로 드나들게 된 타이밍이었다고 들었어요.
- 설립하고 불과 몇 년 만에 APEC 국제회의 그리고 간사이공항에 채택이 된 거네요.
양쪽에 모두 연결해 주신 분이 계세요. 당시에는 일본 국내에서 음식의 다양성에 대한 대응이 아직 보편화 되지 않았었고, 다른 사례가 없었다는 점도 있었지요. 아마 그 당시에는 JICA나 APU(리쓰메이칸 아시아태평양대학) 식당 정도가 아니었을까 싶어요.
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진 공항에도 사용되었다는 점이 임팩트가 컸던 것 같아요. 나리타공항이나 하네다공항에서도 연락을 받았고, 인바운드 여행객이 많이 찾는 호텔이나 레스토랑을 중심으로 단번에 확장되었어요. 2013년에 2020년 도쿄올림픽 개최가 결정된 것도 플러스 요인이었지요.
코로나 사태를 계기로 생활 밀착형 장소로 방향성 전환

- 인바운드의 급성장과 함께 사업이 확대되었다고 하셨는데, 코로나 19의 영향은 어떠신가요?
아무래도 영향이 컸지요. 저희 수익의 절반이 음식의 다양성에 관련된 연수나 컨설팅 사업인데, 코로나 사태 이후에 반년 정도는 거의 정지 상태였어요. 코로나 사태가 장기화될 조짐이 보였던 2020년 9월 즈음부터 온라인으로 사업을 전환하게 되면서 조금씩 회복하고 있는 중입니다.
인바운드라는 맥락에 발 맞춰 사업을 확대해 오기는 했지만, 원래는 일본에 체류하고 있는 외국인이나 알레르기를 가지고 있는 분들에게 꼭 필요한 서비스라는 생각으로 진행해 온 터라, 최근에는 예전과 다른 곳에 서비스를 제안하고 있습니다.
- 어떤 곳에 도입이 진행되고 있나요?
음식의 다양성에 대응한다는 관점에서, 한층 더 실생활에 가까운 장소로 방향을 전환해 가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관광객이 주고객층이 아닌 레스토랑이나 재해가 일어났을 때의 대피소, 학교 급식 현장 등에도 도입되고 있습니다.
- 어떻게 재해 시의 대피소에 도입하게 되었나요?
일본에 체류하는 외국인수도 증가하고 있고, 외국인 관광객이 여행 중에 재해를 겪는 케이스도 늘어나고 있어요. 그 상황에서 먹을 수 없는 음식을 제공받아 식사를 못 했던 사람도 있었고, 음식을 선택할 수 있는 상황에 있어도 언어가 통하지 않았던 경우도 있었어요. 외국인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시청각 장애인에게도 절실하게 필요한 부분이지요.
학교 급식에서의 도입 사례에서도 이야기할 수 있겠지만, 푸드픽토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다양한 현장에서 점점 확장되고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향후의 계획

[신규 사업인 「100% PLANT BASED」 인스타그램 계정에서 발췌. 푸드픽토의 본점이 있는 효고현의 로컬 식재료를 중심으로 구성된 100% 채식 밀키트를 배송하는 서비스]
- 푸드픽토의 사업을 시작하고 15년이 흘렀습니다. 사업에 대한 생각과 앞으로의 전망을 말씀해 주세요.
푸드픽토가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앞서 이야기한 바 있습니다만, 사실은 그 전에 한가지 더 계기가 있었습니다.
학창 시절, 저는 외국어대학교에서 아라비아어를 전공하고 있었는데요. 전공을 선택한 이유는 9.11(미국동시다발테러)때문이었습니다. 당시 고등학교 1학년이었던 저는 충격을 받고, 여러 미디어를 통해 보도를 접하게 되었지만 국가나 종교의 대립 구조를 선동하는 듯한 보도 내용에 의문을 품게 되었어요. ‘이런 다른 점들을 극복하고 서로가 더 좋은 관계를 맺어갈 수는 없을까’ 라고 생각하게 되었고, 언젠가 분쟁 해결이나 평화 구축을 위해 국제기구에서 일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그 후에는 앞서 말씀드린 계기를 통해 푸드픽토 사업에 전념해 왔지만 ‘음식’에는 예전부터 제가 품어왔던 질문에 대한 답이 내재되어 있다고 생각해요. 세계 각국에 ‘한솥 밥을 먹다’라는 뜻을 가진 말이 존재하는 것처럼 ‘음식’을 통해 시간이나 공간을 공유하는 것은 사람과 사람의 인연을 강하게 이어가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믿습니다.
전세계에 현재 알레르기나 종교, 사상으로 인해 3명 중 1명은 음식에 제한이 있다고 합니다. 설사 이렇게 음식에 대해 각자의 사정을 안고 있다 하더라도, 다같이 자유롭게 메뉴를 고르고, 같은 식탁에 둘러앉을 수 있다면 반드시 좋은 세상이 올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유대교도를 위한 코셔 인증이나 무슬림을 위한 할랄 인증, 채식주의자를 위한 베지테리언 인증 등 세계에는 특정 대상을 위한 인증 제도가 폭넓게 활용되고 있습니다. 한편으로, 푸드픽토는 ‘이 요리에 어떤 식재료가 사용되고 있는지’ 정보를 표시해 주는 툴입니다. 만드는 사람이 먹는 사람을 배려하고, 다 함께 같은 툴을 사용해 나가는 것이 이러한 노력에 대한 의식을 높여주고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하거든요.
그런 의미에서도 푸드픽토 사업은 프랜차이즈 패밀리 레스토랑이나 마트 같은 소매점처럼 더 실생활에 가까운 장소에서 전개해 나가고 싶어요.
그 밖에도 음식 섭취에 제한이 없는 사람들을 대상으로도 베지테리언이나 비건 같은 선택에 대해 이해를 돕고자 세계 식문화 교육을 실시하고 있고, 누구라도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식물성 식재료 밀키트인 ‘100% PLANT BASED’의 개발이나 판매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저희 회사에서는 ‘식탁에 둘러싼 다양성 넘치는 대화와 교류의 기회를 전세계에 전달한다’는 미션을 걸고 있는데, 이를 실현시키기 위한 사업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음식과 창의력으로 상생사회에 일조해 나가고 싶어요.
- 마지막으로,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아시아의 사회 혁신가들에게 메시지를 부탁드립니다.
저희 회사는 한국이나 인도네시아에서 인턴 사원을 채용해 왔는데, 모두들 굉장히 열정적이고 능력 있는 분들이라 놀라곤 했습니다. 한국과 이런 인연이 생기기도 했고, 양국 간의 왕래가 자유로워지면 옛 동료를 만나러 가기도 하고, 한국 현지의 소셜 섹터 상황도 공부해 보고 싶습니다.
<사진제공> 株式会社フードピクト
◎株式会社フードピクト:HP
* 해당 기사는 일본어로도 제작 및 발행되어 있습니다. 일본어 기사는 여기 (링크)
* 해당 인터뷰는 코로나19 방역 수칙을 준수하고, 온라인 화의시스템을 사용하고 진행했습니다.
일본어 원문 글 ㅣ 모리카와 유미
일본어-한국어 번역 ㅣ이은
정리・발행 ㅣ이로 ( 대표 우에마에 마유코)
후원 ㅣ서울특별시 청년청 ‘2021년 청년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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