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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아시아 소셜임팩트 트립 #일본편11] 적당히, 재미있게, 더 오래 쓰레기를 줍는 법 : 일본 NPO 법인 그린버드

IRO2022.03.08 16:54

매년 800만 톤의 플라스틱이 바다로 흘러든다고 한다. 해산물에서 나오는 미세플라스틱은 이제 일상적인 이야기가 되었다. 이 많은 플라스틱 쓰레기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독일의 ​​Helmholtz 환경연구센터(UFZ)에 의하면, 바다에 떠돌아다니는 플라스틱 쓰레기의 70~80%는 하천에서 흘러 들어간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 하천 쓰레기의 대다수가 우리가 다니는 거리에서 온다. 거리에 버려진 쓰레기가 바람에 날아가거나 비와 함께 흘러가는 것이다.

 

이러한 거리 쓰레기 문제에 일찍부터 뛰어든 단체가 있으니 바로 . ‘깨끗한 거리는, 사람의 마음도 깨끗하게 한다’는 모토 아래 2002년부터 거리 쓰레기 줍기 활동을 시작, 내년에 20주년을 맞는다. 처음 하라주쿠의 몇몇 청년들이 시작한 활동은 지금 일본 국내외에 약 80개의 활동 거점을 두고 연간 약 3만 명의 사람이 참가하는 활동으로 성장했다.

[그린버드의 거리 쓰레기 줍기 활동. 그린버드 제공]

 

하라주쿠 청년들이 시작한 쓰레기 줍기 활동

 

<그린버드>의 역사는 200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는 길거리 어디서나 담배를 피울 수 있어 담배꽁초 등의 쓰레기가 거리에 넘쳐나던 때였다. 이를 본 몇몇 청년들이 도쿄 하라주쿠 주변 거리의 쓰레기를 줍기 시작한 것이 그 시작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줍고 또 주워도 다음날이 되면 어김없이 새로운 쓰레기가 생겼다. 그저 쓰레기를 줍는 것만으로는 바뀌지 않는다. 그래서 청년들이 생각해낸 방법은 쓰레기 줍기 활동을 눈에 띄게 하는 것이었다. 지금은 트레이드 마크가 된 초록색 유니폼은 이렇게 탄생한다. 즉, 초록색 유니폼을 입은 한 무리의 사람들이 쓰레기를 줍고 있으면, 쓰레기를 쉽게 버릴 수 없는 분위기가 생길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활동을 시작한 다음해 정식으로 NPO 법인이 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그린버드의 트레이드 마크인 초록색 유니폼 조끼. 그린버드 제공]

 

하라주쿠에서 시작하자 일본 각지에서도 비슷한 움직임이 일었다. 패션, 문화, 젊음으로 대표되는 하라주쿠에서 시작했다고 하니 사람들이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쓰레기 문제에 공감하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하나 둘 활동 거점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현재는 일본 내 70개 팀이 활동하고 있고 아시아와 북미, 유럽 등 해외에도 10개 팀이 있다.

[해외 그린버드의 활동. 그린버드 제공]

 

각 팀에는 커뮤니티 리더가 있고, 리더의 통솔 아래 자유롭게 활용한다. 쓰레기를 줍는 요일, 시간대도 지역별로 다 다르다. 도쿄에 위치한 본부는 스폰서나 모금 활동을 통해 경영자금을 확보하고 방향성을 제시하며 각 팀을 서포트 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마실 나가듯 참가하는 쓰레기 줍기 활동

 

<그린버드> 활동은 기본적으로 봉사활동이다. 누구나 가벼운 마음으로 참가할 수 있도록 활동시간은 1시간 남짓이다. 쓰레기 줍기에 필요한 도구도 그린버드 측에서 전부 준비하기 때문에 참가자는 몸 하나만 오면 된다. 회원가입이나 사전신청도 일체 받지 않는다. 리더가 날짜와 시간, 집합장소를 공지하면 참가를 희망하는 사람은 그날 그곳에 나가면 된다. 직전에 마음이 바뀌었다 한들 나무랄 사람도 없다. 그래서 리더조차 집합장소에 갈 때까지 몇 명이 참가할지 알 수 없다고 한다. 그 흔한 권유도 없다. ‘즐거웠으면 다음 주에도 오세요’ 정도가 마지막 인사라고.

 

13년 전, 그렇게 매주 ‘가볍게’ 오고 가던 고등학생이었던 후쿠다 케이스케(福田 圭祐) 대표는 이제 <그린버드>의 세 번째 대표가 되었다. 대학 입시서류에 자원봉사 항목을 채우기 위해 무작정 인터넷에서 ‘쓰레기 줍기’를 검색해 <그린버드>를 발견한 것이 첫 만남이었으니, 환경보호나 자원봉사와 같은 고상한 정신과는 다소 거리가 먼 셈.

 

“갔더니 그날은 여덟 명이 있었는데 점쟁이, 학교 선생님, 음악 프로듀서, 대학생 등이었어요. 고등학생이 주변에 또래 친구밖에 더 있겠어요? 평소에 만나보지도 못한 사람들과 같이 쓰레기도 줍고 얘기도 해보고 한거죠. 그분들도 고등학생인 저를 신기해하더라고요. 환경 문제에 대해 질문할 것 같아서 지구온난화에 대해서도 외워갔는데, 아무도 모르더라고요. 환경보호에 아주 열성적이거나 공부하러 온 건 아닌데, 그럼에도 다들 열심히 쓰레기를 줍는 게 재밌다고 생각했어요. 매주 새로운 사람과의 만남도 기대되고요.”

 

어찌어찌하다 보니 대학생이 되고 사회인이 되어서도 활동을 계속해왔고, 2019년부터 대표직을 맡아 <그린버드>에서 일하고 있다. 특히, 광고회사에서 일한 경험과 노하우를 살려, 쓰레기 줍기에서 나아가 <그린버드>의 다양한 가능성을 실험 중이다.

[후쿠다 케이스케 대표. 그린버드 제공.] 

 

쓰레기가 만들어준 커뮤니티

 

그린버드 참가자는 다양하다. 지역과 소속, 성별, 나이, 국적의 경계를 넘나든다. 참가 목적 또한 제각각이다. 최근에 이사 와서 마을 탐방 겸 참가한 사람, 텔레비전에서 보고 재미있어 보여서 참가한 사람, 학교 숙제로 참가한 학생 등등. 이렇듯 다양한 이들이 ‘쓰레기’를 테마로 모이는 것이 <그린버드>만의 매력이라고 할 수 있다.

 

“쓰레기 줍기는 하나의 커뮤니케이션 도구라고 생각해요. 처음과 달리 쓰레기 줍기 활동을 하는 곳도 많아지고, <그린버드>도 새로운 단계로 나아갈 때라고 생각해요. 쓰레기를 통해 평소에는 만날 기회가 없는 사람들이 연결되어 느슨한 커뮤니티를 만드는 것이 그것이에요.”

 

마을에 관계된 사람은 거주자뿐만이 아니다. 마을에 있는 회사 혹은 학교 통근/통학하는 사람들, 그냥 그곳이 좋아서 놀러 오는 사람, 좋아하는 식당에서 술 한 잔 기울이는 사람 등등 수많은 관계 인구가 존재한다. 아무리 SNS 통해 모르는 사람과 쉽게 연결되는 시대라지만, 실제로 아이들이 마을 어른과 이야기를 나누거나, 회사원이 학생과 대화해 볼 기회는 좀처럼 없다. 그런 이들이 ‘쓰레기 줍기’로 느슨하게 이어지는 것.

 

실제로 이 느슨한 커뮤니티는 위기에서 빛을 발하기도 한다. 가령, 2018년 호우로 오카야마현에서 큰 수해가 났을 때는 <그린버드> 오카야마의 팀이 구호 활동에 힘을 보탰다. 10년 이상 활동을 계속해온 덕에 <그린버드>를 알고 있던 주민들이 먼저 도움을 요청했고, 지역에 공헌하고자 하는 의지를 갖고 있는 <그린버드>가 흔쾌히 구호 활동을 도운 것이다. 평소 다양성과 커뮤니티 만들기를 소중히 해 온 <그린버드>의 또 다른 성과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플라스틱 쓰레기가 아이들 장난감으로

 

최근 <그린버드>는 해양 쓰레기에도 눈을 돌리고 있다. 해양 쓰레기의 반 이상이 거리에서 날아든 것이므로, 마을과 바다는 이어져 있다는 생각에서다. 그중에서도 플라스틱 쓰레기를 회수해 제품화하는 프로젝트, ‘RETTER’와 ‘RePLAMO’를 전개하고 있다.

 

“1년 365일 쓰레기를 줍고 있는데,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자신이 주운 쓰레기가 새로운 무언가로 태어난다면 쓰레기 줍기가 더 즐거워지지 않겠어요?”

 

‘RETTER’는 버려진 쓰레기라는 뜻의 영단어 ‘Litter’에 ‘다시’라는 의미를 가진 ‘Re’를 덧붙인 말이다. 가장 먼저 개발한 것은 일상에서 가까이 두고 사용할 수 있는 코스터였다. 전국 각지의 거리나 바다에서 회수한 쓰레기를 세척하여 분쇄 → 성형 → 가공의 공정을 거쳐 하나하나 수작업으로 만든다. 주운 장소와 쓰레기의 종류에 따라 색과 무늬가 다르기 때문에 세상에 똑같은 디자인이 없는 것도 매력 중 하나이다.

[RETTER의 코스터. 그린버드 제공]

[인기 록밴드 와의 콜라보 상품. 밴드 멤버와 함께 쓰레기를 줍고 그 모습을 사진으로 담아 코스터와 함께 판매했다. 그린버드 제공]

 

RePLAMO는 아이들을 위한 프라모델(조립 장난감)의 일종이다.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환경 문제를 즐겁게 배울 수 있을까 하는 고민에서 태어났다. 프라모델의 첫 타자는 바다거북. 바다거북은 플라스틱을 먹이로 착각해 삼키는 등 해양 쓰레기의 큰 피해자라고 할 수 있다. 일찍이 일본에서는 플라스틱 빨래가 꽂힌 바다거북의 동영상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RePLAMO은 단지 상품을 파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주운 쓰레기가 장난감으로 다시 태어나는 과정 전체를 패키지 상품화했다. 체험 이벤트와 연계하여 아이들이 직접 바다 쓰레기를 줍고, 그 쓰레기로 만든 장난감을 한 달 뒤에 집으로 보내주는 식이다. 아이들뿐만 아니라 함께 온 부모도 해양오염에 대해 인식하는 계기가 된다.

 

“쓰레기를 줍는 것이 아니라 바다거북을 만드는 재료를 모으자고 하면 보물찾기 하는 기분이 들잖아요. 이를 통해 쓰레기 줍기나 환경 문제가 진지하고 딱딱한 것이 아니라 밝고 즐거울 수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고 싶어요.”

[해양 플라스틱 쓰레기로 만들어진 프라모델. 그린버드 제공] 

 

지속가능성의 열쇠는 너무 열심히 하지 않는 것

 

쓰레기 줍기, 언뜻 단순해 보이는 활동 안에서도 <그린버드>는 많은 크고 작은 변화를 꾀하고 있다. 한때 버블티가 유행할 때에는 전용 쓰레기통을 설치하기도 하고, 올해 9월에는 ‘바이오매스 레진 홀딩스’와 함께 쌀로 만들어진 자체 쓰레기봉투를 개발했다. 설립 이래 지금껏 비닐봉투를 써왔지만 플라스틱 쓰레기 문제가 심각해지는 만큼, 청소 ‘도구’ 역시 환경친화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전체 80개 팀이 순차적으로 전환해갈 예정이다.

[쌀로 만들어진 쓰레기 봉투. 그린버드 제공]

 

우리가 모르는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겠지만, 이러나저러나 20주년을 앞두고 있는 <그린버드>. 그 지속가능성의 열쇠에 대해 너무 열심히 하지 않는 것이라고 후쿠다 대표는 강조한다.

 

“남은 쓰레기가 눈에 보여도 1시간이 지나면 해산해요. 다음에 또 치우자고 하는 거죠. 즐거웠다, 다음에도 참가하고 싶다고 느끼는 게 중요해요. <그린버드>는 입문자를 위한 퍼스트 스텝이 되고 싶어요. 더 열심히 하고 싶은 사람은 다른 단체를 찾으면 된다고 생각해요.”

 

최근에는 SDGs 붐으로 여기저기서 연락이 많이 온다고 한다. SDGs가 환경 문제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보니 뭔가 해야 할 것 같은데 무엇을 하면 좋을지 몰라 무작정 전화하는 기업이나, 학교 숙제를 위해 참가하는 학생이 부쩍 늘었다.

 

“어떻게 보면 활동의 질 자체는 떨어질 수 있어요. 하지만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해요. 계기야 어떻든 쓰레기를 주우면서 조금이라도 생각이 바뀐다면 그걸로 충분해요. 다양한 가치와 목적을 가진 사람들을 어떻게 끌어들일 것인가가 지금까지도 앞으로도 가장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해요.”

 

더 많은 사람들을 위한 퍼스트 스텝

 

사업이든 자원봉사든 무엇이 되었든 간에 무언가를 여럿이서 오래 지속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첫 번째 펭귄은 후발주자에게 영감을 주고 롤모델이 되는 만큼 스스로를 계속 혁신해야하는 과제를 늘상 안고 있다. <그린버드>가 시작된 20년 전엔 길러기에 쓰레기가 돌아다니는 것이 일상이었지만, 그간 시민들의 의식도 많이 바뀌고 이제는 행정과 기업에서도 환경문제에 적극적이다. 그래서 <그린버드>는 더 많은 사람들을 위한 퍼스트 스텝을 자처한다. 기업, 스포츠 구단, 록밴드 등 다양한 이들과 콜라보 하는 것도 다양한 사람과의 접점을 만들기 위해서이다.

 

<그린버드>가 말하는 덜 열심히 하는 것, 가볍게 하는 것은 열의나 진심의 문제가 아닐 것이다. 오히려 사람과 관계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또 다른 표현처럼 들린다. 느슨한 연결고리가 하나씩 생길 때마다 조금 더 나은 사회가 다가온다고 믿는다.

[그린버드는 더 많은 사람들을 위한 퍼스트 스텝이 되도자 한다. 그린버드 제공]


 관련 사이트

 

글쓴이 : 박소담. 2014년부터 5년 간 서울의 중간지원조직에서 협동조합, 사회적기업, 마을기업 등을 지원하는 일을 했다. 현재 일본 와세다대학에서 석사 과정을 밟고 있다.

 

발행 : 이로 (대표 : 우에마에 마유코) 

 

사진 및 자료 제공(写真・資料提供)ㅣ그린버드 (特定非営利活動法人グリーンバード)

후원 : 서울특별시 청년청 ‘2021년 청년프로젝트’

 

아시아 소셜임팩트 트립 #일본편 

이 시리즈에서는 아시아 각 도시의 사회혁신사례, 혁신가들의 활동과 그들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여전히 해외여행이나 해외연수를 가기가 어려운 지금,  "어떤 사회문제가 있고 어떤 활동이 있을까?", "와, 만나보고 싶어! 더 알고 싶어!" 등, 소소한 ‘앎의 계기’와 ‘연결과 교류’의 계기를 만들어가는 시리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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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쓰레기 #일본 #자원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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