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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아시아 소셜임팩트 트립 #일본편12] 비닐우산 업사이클 브랜드 PLASTICITY

IRO2022.04.07 16:51

 ‘빨간 우산, 파란 우산, 찢어진 우산~’

노래 가사와는 달리, 요즈음 비오는 날 거리에서 가장 많이 보이는 건 비닐우산이다. 편의점, 천원샵 등 어디서나 구할 수 있고 가격도 저렴하기 때문에 우산을 깜빡한 날에도 가볍게 사서 쓰고 버리기 쉽다. 그래서인지 분실물이나 쓰레기통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일본에서는 한 해 약 8천만 개의 우산이 폐기된다고 한다. 비닐우산은 재활용이 어렵기 때문에 대부분 매립되거나 소각된다. 아깝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비닐로 뭘 할 수 있겠어?’ 의구심이 드는 것도 당연하다. 이 당연함에 도전한 브랜드가 <PLASTICITY>이다.

 

<PLASTICITY>는 비닐우산을 가방, 지갑, 모자 등으로 업사이클한다. 에코 제품을 만드는 회사 주식회사 Mondo Design과 크리에이터 사이토 아키(齊藤 明希) 씨에 의해 만들어졌다. 얇은 비닐이 어떻게 튼튼한 가방으로 재탄생하는지, 사이토 씨로부터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비닐우산을 업사이클 해서 만든 가방. Mondo Design 제공]

 

어디에나 있지만 아무도 필요로 하지 않는 것

 

<PLASTICITY> 제품을 최초로 고안한 사람은 사이토 씨이다. 사이토 씨는 4년 전만 하더라도 평범한 회사원이었다. 평소에도 윤리적 패션에 관심이 많았는데, 환경이나 동물에 친화적인 가방을 사고 싶어도 파는 곳이 많지 않았다. 그래서 직접 친환경 소재로 가방을 만들고 싶어 회사를 그만두고 전문학교에 입학했다. 그런 그의 눈에 계속 들어왔던 것이 바로 비닐우산.

 

“윤리적 소재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있어요. 비건 가죽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지만, 분해과정을 생각하면 진짜 가죽이 좋다는 사람들도 있어요. 그런데 저는 아무도 필요로 하지 않는 것, 세상에 갈 곳 없는 것을 사용하고 싶었어요. 전부터 버려지는 비닐우산이 신경쓰였는데, 가방으로 만들었을 때의 모양이나 소재감, 이미지가 상상이 됐어요. 어떻게든 될 것 같았죠.”

[ <PLASTICITY>를 개발한 사이토 아키. 사이토 아키 제공]

 

사이토 씨가 다니던 학교에서는 매년 가을 축제에서 학생들이 작품을 만들어 판매한다. 사이토 씨는 친구들과 함께 이때 처음으로 비닐우산으로 만든 가방을 선보였다. 사실 비닐우산을 활용해 가방을 만드는 아이디어는 계속 갖고 있었지만 실현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했다. 브랜딩과 디자인, 소재 개발까지 약 반년이 걸렸다. 그 중 가장 어려웠던 것은 단연 비닐 소재의 활용법을 터득하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비닐 그대로를 재단해 가방을 만들었는데 싸구려 같다는 평이 많았다. 색도 넣어보고 다른 재료도 섞어보고 열도 가해보는 등 여러 시행착오를 거친 끝에 비닐을 겹겹이 겹쳐 압착시킨 지금의 방식을 개발하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색소나 접착제와 같은 재료가 전혀 들어가지 않고 열만으로 압착하기 때문에 제조 공정도 친환경적인 셈이다.

[학교 축제 준비 및 전시 모습. 사이토 아키 제공]

 

비닐우산 업사이클을 비즈니스로

 

사이토 씨가 만든 가방은 방문객들에게 좋은 반응을 받았다. 학교 축제는 패션 관련 기업의 관계자들도 많이 방문하는데, Mondo Design도 그중 하나였다. Mondo Design은 ‘일본에도 친환경 디자인’이라는 컨셉으로 친환경 소재를 사용한 에코 제품을 개발하고 판매하는 회사로, 폐타이어를 활용해 만든 가방 등을 제공하고 있다. 사이토 씨의 작품을 본 Mondo Design 측에서 비즈니스를 제안했고, 2020년에 <PLASTICITY> 브랜드를 정식으로 런칭했다.

[학교 축제에 선보인 작품. 사이토 아키 제공] 

 

생산 과정도 바뀌었다. 그전까지는 집에서 다리미나 조리도구 등을 활용해 가방을 만들었다. 사이토 씨는 공장을 이용하지 않고 주변에 있는 것들을 활용해 직접 만드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그래서는 비즈니스로 성립하지 않는다. 좀 더 효율적으로 생산하고 품질을 높이기 위해 장인의 힘을 빌리기도 했다. 그래서 현재 <PLASTICITY> 대부분은 디자인은 사이토 씨가 담당하지만, 브랜드 운용은 Mondo Design이 담당하고, 실제 제작은 전문 공장에서 이루어진다. 한 사람의 아이디어가 좋은 디렉터와 장인을 만나 제품화를 실현한 것이다.

[전문 공장에서 생산되는 <PLASTICITY> 제품. Mondo Design 제공]

 

비닐 원단 Glass rain

 

우산은 역이나 쇼핑몰의 분실물 중 주인이 찾아가지 않아 폐기 처분되는 것을 중심으로 회수하고 있다. 또한 고객들이 버리는 비닐우산을 해체해 보내주면 포인트를 주는 시스템도 있다. 이렇게 회수한 우산은 크기나 소재, 구조가 제각각이기 때문에 모든 과정이 수작업으로 진행된다.

 

먼저, 우산대와 비닐을 하나하나 분해해 세척한다. 그 다음 자체적으로 개발한 프레스 공법을 사용해 4-6장의 비닐을 열과 압력으로 압착시킨다. 이렇게 하면 물이나 오염에 강한 비닐의 특성은 유지하면서도 두께는 두꺼워져 더욱 내구성 있는 소재를 만들 수 있다. 압력이 가해지는 과정에서 독특한 무늬가 생기는데, 그것이 마치 투명한 창유리에 흐르는 비와 같다고 하여 ‘Glass rain’이라고 부른다.

[분해된 우산. Mondo Design 제공] 

[프레스 공법에 의해 생긴 독특한 무늬. Mondo Design 제공] 

 

이렇게 만들어진 ‘Glass rain’ 원단은 장인의 손에서 가방, 모자, 지갑 등으로 재탄생한다. 토트백의 경우 스몰과 라지 사이즈가 있다. 우산 크기가 크게는 소형/대형으로 구분되기 때문에 최대한 낭비를 없애기 위해 두 개 사이즈를 고안했다.

[비닐우산 업사이클로 탄생한 제품들. Mondo Design 제공]

 

비닐우산은 대부분은 투명 혹은 흰색이 많지만 간혹 색이나 무늬가 들어간 것도 있다. 수거하는 우산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어떤 때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제품이 나오기도 한다. 특성상 녹이 묻은 비닐도 버리지 않고 그대로 살려서 활용한다. <PLASTICITY>의 가방을 사는 소비자들은 그런 덜 완벽함을 좋아한다.

 

“가방 산 사람들은 녹이 묻은 것도 귀엽고 특별하다고 생각하더라고요. 세상에 하나뿐인 가방이잖아요. 자신이 늘 쓰레기로만 보던 것을 멋지다고, 갖고 싶다고 생각한다는 것에 놀라워하는 것 같아요.”

 

최근에는 다른 기업으로부터 협업 제의도 많이 받는다. 사내용 물건 제작을 의뢰하기도 하고, 행사에서 사용하고 남은 우산을 제공하기도 한다. 얼마 전에는 무민 밸리 파크의 전시에 사용된 형형색색 우산을 재활용해 가방으로 만들기도 했다.

[무민 밸리 파크의 전시에 사용된 우산으로 만든 가방. Mondo Design 제공]

 

10년 뒤에는 없어질 브랜드

 

물론, 재활용하지 않고도 유사한 제품은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비슷한 소재로 PVC(폴리염화비닐)이 있다. 하지만 <PLASTICITY> 제품과 PVC와의 차이는 물리적인 것이 아니라 스토리와 가치관이라고 이야기한다. <PLASTICITY>의 제품은 비닐우산을 재활용하기 때문에 새로운 비닐을 만들지 않고, 그만큼 에너지와 자원을 절약할 수 있다. 환경 문제에 더욱 적극적으로 임하기 위해 매출의 10%를 해양 플라스틱 쓰레기 문제를 다루는 단체에 기부하기도 한다.

[일반 PVC와의 차이는 스토리와 가치관이다. Mondo Design 제공]

 

이렇게 멋진 브랜드인데, 사이토 씨는 <PLASTICITY>가 10년 후에는 없어져야 하는 브랜드라고 말한다. 지금 사용하는 우산이 10년 후에는 더 이상 재활용할 필요가 없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비닐우산을 쓰는 것 자체가 잘못됐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어떻게 사용하느냐의 문제이죠. 지금 비닐우산은 소재로서 어디서나 쉽게 구할 수 있어서 문제라고 생각해요. 예를 들면, 우산대까지 전체가 재활용 가능한 소재로 된 우산이 개발되거나, 비오는 날 비닐우산을 사는 것 외에 다른 대안이 있다면 어떨까요?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폐기되는 비닐우산을 구하기 어려워지고 <PLASTICITY> 가방을 만들 수 없겠죠.”

 

지금의 사이토 씨는 ‘정말로 10년 후에 없어진다면?’이라는 상상을 하면서 지금 무엇을 할 수 있을까에 집중하고 있다. 비닐우산 외에도 재활용이 필요한 소재는 많겠지만 그렇다고 무리하게 업사이클을 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개발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을 모두의 생활에 갖고 들어오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양한 소재와 형태에 도전하고, 그렇게 탄생한 작품을 개인전 등을 통해 나누고 있다. 조금은 귀찮고 고되더라도 끊임없이 손을 움직여서 만들고 생각하며 자신이 깨달은 것을 나누고 싶다고. 그것이 누군가에게 닿아 힌트가 된다면 더더욱 좋고.

[ Mondo Design 제공]

 

영단어 ‘plasticity’는 유연성, 가소성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외부 압력에 따라 모양이 자유자재로 바뀌는 플라스틱의 성질을 이르는 말이라고 한다. 주인 없이 버려진 비닐우산이 세상에 하나뿐인 누군가의 가방으로 재탄생하는 과정이 꼭 그렇다. 또 한편으로는 우리가 가져야 하는 마음가짐에 대한 일침이다. 시대와 환경의 변화에 맞게 생산과 생활, 마인드도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마인드는 소비패턴이나 가치관일 수도 있지만, 사물을 바라보는 유연하고 편견없는 사고일 수도 있다. 사물을 본래의 쓰임과 형태로부터 떼어놓고, 무엇이든 될 수 있는 가능성의 대상으로 보는 것. 거기에서 <PLASTICITY>가 나온 것이 아닐까. 혹시 아는가. 주변을 보면 가방이 될 수 있는 쓰레기가 또 있을지.


관련 사이트

글쓴이 : 박소담. 2014년부터 5년 간 서울의 중간지원조직에서 협동조합, 사회적기업, 마을기업 등을 지원하는 일을 했다. 현재 일본 와세다대학에서 석사 과정을 밟고 있다.

 

발행 : 이로 (대표 : 우에마에 마유코) 

 

사진 및 자료 제공(写真・資料提供)ㅣPLASTICITY, 주식회사 Mondo Design, 사이토 아키님 

후원 : 서울특별시 청년청 ‘2021년 청년프로젝트’

 

아시아 소셜임팩트 트립 #일본편 

이 시리즈에서는 아시아 각 도시의 사회혁신사례, 혁신가들의 활동과 그들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여전히 해외여행이나 해외연수를 가기가 어려운 지금,  "어떤 사회문제가 있고 어떤 활동이 있을까?", "와, 만나보고 싶어! 더 알고 싶어!" 등, 소소한 ‘앎의 계기’와 ‘연결과 교류’의 계기를 만들어가는 시리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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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사이클 #일본 #사회혁신 #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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